[증권심리학]
허황된 기쁨에 들떠 부화뇌동파 투자자는 돈이라는 요소가 부정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 같은 강세장의 원동력은 통화량이 팽창한 덕이었다. 그 사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된 앨런 그린스펀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막기 위해 1987년 1월부터 여름까지 수차에 걸쳐 금리를 인상했다.
자금 시장에서 장기 채권의 이자율이 2퍼센트로 올라갔다.
8월의 다우존수 지수는 2722포인트였고, 이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시장은 하강운동의 첫번째 국면인 조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 때는 새로운 고객이 없으므로 약간의 매도만 있어도 시세가 바로 떨어진다.
8월부터 10월 사이에 시세는 천천히 떨어졌다.
주식투자자들의 신경은 점차 예민해졌고 계속해서 매물이 시장에 나왔다.
10월 19일, 아직까지 전기 충격은 없었다. 골든 보이들이게는 마지막 요소인 ‘행운’마저 없었다.
이미 전 주에 시세가 떨어져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에 선물 포지션을 유지하려면 유지증거금을 추가로 내야했다. 그러나 그들은 추가 지급을 할 능력이 없었다.
10월 19일, 포지션의 강제해지가 시작되었고 이는 S&P500 선물 시세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시세가 떨어짐에 따라 계속해서 추가증거금이 요구되었으나 많은 투자자들이 그 돈을 못 내 결국 강제 매도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는 다시 시세 하락을 일으켰다. 이 눈사태는 정말 막을 수 없었다.
선물시장은 현물시장보다 항상 떨어졌고 그로 인해 월스트리트에서는 매도가, 시카고 선물 거래소에서는 매수가 몰리게 되었다. (왕개미 설명 : 이 당시엔 차익거래가 가능했다.)
나는 우연히 10월 19일 어느 브로커와 함께 있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전화벨이 쉬지 않고 울렸다. 모두가 흥분한 고객들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였다. 그들은 평상시와는 다른 주문을 냈다. 주가 상승기에 합류한 부화뇌동파 투자자들의 주문은 오직 한 가지였다.
“몽땅 팔아라”
폐장을 알리는 4시가 되자 주식시장은 다우존수지수 508포인트 하락으로 마감되었다. 시장이 폭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1987년 10월 19일 이 덤핑 가격에 주식을 산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소신파 투자자들이다. 그들은 돈도 가지고 있고 인내도 있었다.
그 때의 주식시장 폭락 이후 아주 똑똑한 친구인 하이코 티메를 우연히 공항에서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도이체방크에서 월스트리트 전문가로 일했으며, 현재도 뉴욕에서 자신의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나처럼 매우 낙관적이었으므로 나는 그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그게 오히려 사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천번 만번 낫다고 생각한다.
1987년에 나는 매수자 입장에 있지 않았으며 현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도 편했다. 또한 당시 대규모 폭락을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저런 주식을 내다 판 후였다.
나는 1980년대 월스트리트의 여러 강세장에 대한 의견을 자주 써 왔으나 그때 나의 글은 예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나는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증시 붕괴가 있기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은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다.
내가 그 시기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 경험 많은 코는 파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증시 붕괴 다음날 내가 낙관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한 말 덕분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경제 및 금융시장의 지원을 위해 자금 유동성을 늘릴 계획입니다.”
그 말로 나는 위기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린스펀의 발언은 소신파 투자자들에게 증시 진입을 알리는 종소리로 들렸다. 돈이라는 요소가 긍정적이 되었으며, 다음 호황은 시간 문제였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심각한 경제 위기를 예고했다.
1998년 시장은 다시 과장국면에 들어섰다. 누구든 시장에 참여하고자 했다.
2년 전만 해도 증권시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 맛을 알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정신없이 먹어치우려고 했다. 증권 중독증에 걸린 셈이었다.
다시 반격할 때가 되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지만 오직 부풀려진 풍선을 찌를 바늘만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세 가지 종류의 바늘이 나타났다. 동남아시아의 경제 위기, 심각한 상황의 러시아 재정, 그리고 과장된 투기 열풍에 대한 앨런 그린스펀의 경고등이 다시 시세 하락을 부추겼다.
다시 세계적인 경기 침제와 디플레이션이 예견되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세계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자금을 풀었다. 이 조치는 소신파 투자자들에게 시장회복의 종소리를 울렸다.
돈은 다시 긍정적이 되었고, 시세는 떨어진 만큼 빨리 회복했으며, 경제학자들이 예견한 침제기와 디플레이션은 오지 않았다.
1년 전에 증권거래인들이 디플레이션을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이 오를까봐 두려워한다.
급속한 생산성 향상 덕분으로 인플레이션 없이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 확실해지면 그때서야 분위기가 고조되고 상승운동의 제3국면으로 들어설 것이다. 그러면 한차례 붐이 있은 뒤 다시 대규모 후퇴를 해야 할 것이다.
[붐과 주가폭락 : 분리할 수 없는 쌍]
1982년과 1987년 사이에 일어난 증권시장의 변동은 대표적인 사이클 순환의 예이다. 이런 예는 역사상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원자재든 외환이든 또는 부동산이든 모든 사이클은 동일한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
상승운동 및 하강운동은 인간 심리, 즉 놀라서 당황하거나 혹은 신이 나서 들떠 있는 심리 상태의 반영이다. 붐이나 주가 폭락은 절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쌍이어서, 하나가 없는 다른 하나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다.
번성기에 붐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결국에 가서는 그것을 터뜨리는 바늘이 나타난다. 그것은 영원불변의 법칙이다. 붐 없이 폭락 없고, 또한 폭락 없이는 붐도 없다.
[뚜렷한 주관의 소유 여부]
투자자가 대중심리로부터 벗어나 하강운동의 과장국면에서 매수했다고 하면, 그는 그 이후에 주가가 떨어져도 주식을 계속 소유할 수 있는 강한 주관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손실이 과중하게 되면 스스로 너무 당황해 정신을 못 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고비를 넘고 시장이 다시 상승운동을 시작하더라도 강세장이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만약 이 전개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황을 새로 검토해야 한다. 진단 결과 이것이 잠깐 지나가는 흐름이라는 결론이 나오면 투자자는 귀를 쫑긋 세우고 확실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이나 중요한 정치, 경제적 또는 금융 정책의 결정, 정권 교체 등 미처 헤아리지 못한 중요한 변수가 생기면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 사랑스럽고 희망 넘치던 그곳에서 당장이라도 뛰어내려야 한다. 즉, 투자자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 신념이 있다면 계속 견뎌내야 한다. 오직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내가 탄 배가 잘못된 배라고 생각되면 가능한 한 빨리 뛰어 내리라는 말이다. 요컨데, 투자자는 단단하기도 하고 유연하기도 해야 한다.
코스톨리니의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는 투자서의 바이블급 책으로 알려진 책이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되, 차갑게 움직여야한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필요한 것은 소신과 용기이다.
그는 투자자가 대중의 히스테리에 파묻히지 않으려면 훈련을 해야 하며 냉정하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이것이 바로 성공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투자자는 용기도 있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줄도 알아야하며, 게다가 현명해야 한다. 그리고 “난 알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어” 라고 스스로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라고 독자에게 주장하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투자자의 자격을 갖추었는가 다시 생각해본다.